시
꽃
조은
오래 울어본 사람은
체념할 때 터져 나오는
저 슬픔과도 닿을 수 있다.
첫사랑
이운학
그대가 꺽어준 꽃,
시들 때까지 들여다보았네
그대가 남기고 간 시든 꽃
다시 필 때까지
눈길
박남준
그 눈길을 걸어 아주 떠나간 사람이 있었다
눈 녹은 발자국마다 마른 풀잎들 머리 풀고 쓰러져
한쪽으로만 오직 한편으로만 젖어 가던 날이 있었다
꽃 지는 저녁
정호승
꽃이 진다고 아예 다지나
꽃이 진다고 전화도 없나
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
지는 꽃의 마음을 아는 이가
꽃이 진다고 저만 외롭나
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
꽃 지는 저녁에는 배도 고파라
호수1
정지용
얼굴 하나야
손바닥 둘로
폭 가리지만,
보고 싶은 마음
호수만 하니
눈감을밖에
맘 켱기는 날
김소월
오실 날
아니 오시는 사람!
오시는 것 같게도
맘 켱기는 날!
어느덧 해도 지고 날이 저무네!
동짓달 기나긴 밤을
황진이
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
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
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드란 굽이굽이 펴리라